
미국의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 스쿨에서 유리를 전공한 김기라작가는 스튜디오 글라스 운동의 본고장인 미국의 유리예술을 한국에 소개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2005년부터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미국 GAS(Glass Art Associates, 미국유리예술위원회)의 임원으로 해외 활동을 시작하면서 한국유리 1세대작가로서 한국유리미술이 세계로 뻗어 나가는데 큰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김기라작가는 도자를 전공한 배경을 바탕으로 유리 작업에서 회화적 표면과 조형적 구조를 결합한 독자적 언어를 구축해왔다. 캐스팅된 유리 블록을 열로 이어 붙이며, 유약과 옻칠을 연상시키는 질감을 통해 유리의 투명성과 불투명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그의 작업에는 집, 창, 계단과 같은 건축적 요소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이는 기억과 내면의 공간을 상징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화면은 큐비즘적 구도와 층위 구조를 통해 공간과 시간이 중첩되는 감각을 만들어낸다. 유리는 단순한 재료를 넘어, 회화와 조형 사이를 매개하는 물질로 작동한다.
Toyama Glass Museum, Alexander Tutsek-Stiftung, Palais de Tokyo 등 주요 국제 기관 전시에 참여했다. 2024년 로에베 재단 공예상 파이널리스트로 선정되며 국제 무대에서 주목을 받았다. 작품은 서울공예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Alexander Tutsek-Stiftung 등 주요 기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현재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지속적인 재료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나의 작업은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생각을 일상의 오브제를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나의 삶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 자연 속에서의 경험들. 사물과 사람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중성, 즉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순간과 영원함, 담음과 비움, 밝음과 어두움, 강함과 연약함과 같은 관계를 유리의 투명, 반투명, 불투명성 등, 유리가 가지고 있는 물성을 통해 새로운 조형언어로 표현하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사물을 비일상적이고도 큐비즘적인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써 본질적인 문제들을 만나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의 드로잉 과정에서 표현되는 환상들과 그것들을 입체로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결과들도 나의 흥미를 끈다. 1980년대 중반과 90년대에는 큐비즘적인 시각을 통해 사물들을 재배열함으로써 유동적인 상태를 추구했다면, 2000년대부터는 한국유리작가로서의 문화적 정체성을 고민하게 되었고, 수묵화의 농담과 선묘적인 효과를 유리의 투명한 이미지에 결합하고자 했다."